‌베베어카 파빌리온은 제8회 카쎌도큐멘타에 설치되었던 독일의 예술가 슈테판 베베어카의 작품을 악쎌 부룩 호이져가 사들였고 울리히 크뤼거가 임대해 뮌스터 아아호수 변의 잔디밭에 설치하였으며, 베베어카의 의도대로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해마다 변수가 있지만 일 년에 몇 명의 예술가를 공모전을 통해 선발하여 전시비용의 일체를 지원하며 전시를 열어준다. 작가는 2002년에 공모에 당선되어 2003년 봄에 전시를 했다. 아아 호수의 잔디밭에 설치된 유리 구조물은 지금껏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공간이었다. 작품 "밖의 안, 안의 밖"은 여러 가지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만들었다. 전시는 공모 때부터 보안상의 문제로 입장할 수 없다는 조건을 두었다. 입장 금지된 공간을 입장하지만 입장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구조물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관객의 접근을 제한하는 예술과 제도에 대한 비아냥거림 이기도 하다. 형태는 인도전통의학 아율베다에서 ‘인간의 소화기관이 인간의 피부인 외피와 마찬가지로 내피로서 피부의 연장이라고 보았던 것’ 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The Wewerka Pavilion by the German artist Stefan Wewerka, exhibited at the 8th Kassel Documenta. It was bought by Axel Bruchhauser and was leased to City of Münster. The pavilion now is installed on Aasee pond in Münster and as the artist, Wewerka wished the pavilion is used as an exhibition space. Every year, several artists are selected through the competition to exhibit the work in the pavilion. The artist, Chun won the competition in 2002 and exhibited his work in Spring of 2003. Due to the frequent vandalism, the city prohibited the audience to enter into the pavilion. Understanding the circumstance, the artist designed the work to be installed in the pavilion yet the audience was able to walk through the tunnel like structure in the Wewerka Pavilion which was prohibited to enter. The structure reflected not only the artist’s sarcasm of unapproachable state of art but also the Ayurveda belief that the intestine is the extension of the skin of a human.

밖의 안, 안의 밖 - 전시서문
 
페르디난트 울리히 |  레클링하우젠 미술관 디렉터
철학자 헬무트 플레스너는 1928년에 그의 주요 저서인『유기성과 인간의 단계들』을 출간했다. 플레스너는 "기발함"이라는 법칙에서 인류학의 철학적 분야를 전개했다. 그는 관점을 바꾸고 내부적 인식에서 외부적 인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독특한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동시에 객관화는 또한 자기 객관화를 뜻하며, 이것은 인간의 발달 단계가 시작될 때부터 공간의 물리적 존재에 내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대광의 작업은 바로 이런 점을 다루고 있다. 육체적 자기인식, 그리고 특정한 공간과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미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다루는 것이다.
천대광 작가는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 교정에서 보여준 작업과 공공 예술(베스트팰리쉔 성 프로젝트) 작품을 통해 섬세하고 세심하게 작업을 펼쳤다. 예를 들어 나무로 만든 돔이 점점 가늘어지는 파이프와 같은 형태를 띠며 테두리가 없는 종처럼 생긴 구조를 만들거나, 작가가 다니던 학교의 정원 가장자리에 있던 옛 건물 앞 땅에 전망대를 설치한 것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땅에서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런 점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감상자의 물리적 위치가 변화했다는 점이다. 거친 나무판으로 숲 속에 만들어낸 산책로는 다른 장소로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니다. 대신, 이 산책로는 말하자면 길을 꾸며내듯 출발점으로 돌아가며, 중간에는 묵상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베베르카 파빌리온에서는 파빌리온의 입구에서 다른 쪽 문으로 이어진 나무 터널을 구축한다. 터널의 중심부에는 나무로 만든 돔이 자리한다.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베베르카 파빌리온의 유리 “진열장”에 들어가거나 심지어 통과해볼 수 있다. 하지만 통로와 파빌리온에 동시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건물과 이어졌다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인간의 몸에는 충분한 크기지만 상대적으로 좁은 통로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될 때, 파빌리온에서 경험할 것이라고 예상한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기대는 이뤄지지 못한다. 대신, 그와 다른 경험이 떠오르게 된다. 이 작품의 관람자는, 말하자면 이중으로 내부에 존재한다. 파빌리온과 통로 안에 존재하는 것인데,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통로의 내부뿐이다. 마치 생명체의 몸을 통과하는 길을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통로를 이루고 있는 판목들 사이에 작은 틈이 있어 완전한 차단은 이뤄지지 않고, 그 자체로 내부라 할 수 있는 둘러싼 공간의 공간감 정도를 안겨준다. 작품을 관람한 뒤에는 아아호수공원의 자연 환경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또 다른 점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는 빛에 따라 작품이 변한다는 점이다. 낮에는 복도와 중앙의 돔 구조물 안으로 햇빛이 들어와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돔에는 환한 빛이 들어오며, 황혼에서 밤으로 이어질 때 빛의 분위기를 천천히 뒤집는다. 밤이 오면 더 이상 외부의 빛을 통해 공간이 환해지지 않고, 안에서부터 밖을 향해 스스로 빛을 낸다. 따라서, 순환하는 빛의 변화와 더불어 관람자의 물리적 움직임 역시 내부와 외부의 공간이 맺는 관계를 변화하게 한다.
천대광의 작업은 설치라고 불리는 것 외에도 고전 조각을 반영한다. 헨리 무어, 토니 크랙, 리처드 디콘 이나 아니쉬 카푸어 등 특히 20세기 영국 조각에서 보이는 특징인 빈 공간과 구멍의 활용이 천대광 작업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공식적인 전시(戰時)예술가였던 헨리 무어는 런던 지하철의 수직 통로에서 후에 널리 알려진 “방공호 드로잉”을 그렸다. 독일군의 폭격을 피해 지하철 역으로  뛰어 드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다. 작품에서는 지하철과 도시의 내부가 방공호로 변한다. 이 작품에서 헨리 무어는 표면의 부피를 표현하는 특별한 형태로써 그물 선을 활용하는 기법을 만들어 전개한다. 작가는 대상의 표면에 그린 무수한 그물 선을 통해 이용해 음영을 넣지 않고 부피를 강조했다. 천대광의 작업에서 보이는 나무판 사이의 여러 틈도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해낸다. 재료가 뿜어내는 강한 존재감을 뛰어넘는 조각적 형태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점이 작품의 겉모습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규정한다. 나무를 쓰는 것은 가변적이고 일시적인 재료와 맞아떨어진다. 이것은 다른 작업 방식과 달리 삶의 원칙을 드러내며, 이러한 원칙이야말로 오늘날 나무를 쓰는 것이 사람들을 매혹하는 이유이다.
천대광 작업을 살펴볼 때, 구상-추상 미술의 측면에서는 데이비드 내시와 루돌프 바흐터를, 구상 미술에서는 칼 만프레드 렌너츠와 후나코시 가츠라를 언급해야 하겠다. 작품을 구축한 재료의 사용 측면에서는 클라우스 부리가 만든 건축적 조각이나 카와마타 타다시가 지은 넓은 길, 다리, 사회적인 점을 강조하는 주거 공간에서 천대광 작가의 참조점을 찾아볼 수 있다. 베베르카 파빌리온의 작업은 내부를 드러내며, 동시에 이것을 간명한 외부적, 조형적 형태로 탐구하고 명명할 수 있다. 이 작업은 특정한 장소와 상황에 맞아떨어진다. 천대광의 작업은 오직 작가가 정해둔 형태와 기능이 미리 규정된 형태와 기능과 조화를 이룰 때만 미학적 의미를 소유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는 작품을 관람자의 물리적인 자기 경험과 그의 움직임이 매우 중요하다. 관람자는 행동하고, 내부를 통과해 들어가고, 자신이 공간적인 상황의 일부로써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작가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작품의 관람자이다.

번역: 박재용

‌Dai-Goang Chen – The exterior of the inside, the interior of the outside
 
Dr. Ferdinand Ullrich l Director of Kunsthalle Reklinghauen
In 1928, the philosopher Helmuth Plessner published his major work Man and the Stages of the Organic. Plessner developed a philosophical anthropology culminating in the principle of “eccentricity.” He described that the ability to change perspective and the ability to switch from inner perception to outer perception are unique to humans. At the same time, objectification also means self-objectification, which is constituted in the space-physical existence of human beings from the beginning of their development.
That is what Dai-Goang Chen's work is all about: physical self-awareness, aesthetic recognition of one's own position in particular space and the world.
From Dai-Goang Chen, we know the most elaborate and carefully executed works from the Kunstakademie Münster and projects in the public space (Kunst in Westfälischen Schlössern): for example, a wooden dome with a tapering chimney-like pipe of which entire structure is in the form of a rimless, Asian bell; a viewing platform on the ground of the artist’s school, positioned in the corner of the courtyard in front of the former stables. You cannot see much from this platform than from the ground. But that's not the point. One’s own physical change of position is meaningful. One should see oneself and experience oneself.
Chen’s system of paths made of rough boards in the forest does not by any means describe the shortest route to a destination, but instead leads, as it were, ornamentally to the starting point, interrupted by places of meditation.
In the Wewerka Pavilion, Chen builds a wooden tunnel that runs through the pavilion from one door to the other. The middle of the tunnel opens into a wooden dome space. For the first time, you can go into the glass "showcase" of the Wewerka Pavilion - or even pass through it - but the moment you enter the tube and the pavilion at the same time, you lose your connection to the building. Trapped in a relatively narrow tunnel, big enough for human dimensions, the expectation of a physical and spatial experience of the pavilion will be disappointed, and instead a different experience will arise.
The viewer is, so to speak, twice inside: in the pavilion and in the tunnel, but he only directly experiences the interior of the tunnel. It's like the passage through an organic body. However, since the shuttering of the tunnel by crude wooden boards has narrow gaps, there is still no complete seclusion, but at least a sense of the surrounding space, which is itself an interior, before one can see the natural environment of the Aasee Park.
Also important in this work are the different light situations during the day. Sunbeams fall into the tunnel and the central dome. They generate movements of light and shadow. In the dome is a spotlight, which gradually reverses the mood of light from dusk to night. Then, the tunnel is no longer illuminated from outside by the daylight but it shines out of itself, from inside to outside.
Thus, both the physical movement of the viewer as well as the cyclic light change changes the relationship between interior and exterior space.
In addition to what is otherwise referred to as an installation, the classical sculpture is also reflected in the artist’s work. The blank space and cavity, which are found particularly in the English sculpture of the 20th century such as Henry Moore, Tony Cragg, Richard Deacon, or Anish Kapoor, have played a major role in Dai-Goang Chen’s work.
Henry Moore, as an official "wartime artist" during the Second World War, drew his famous "Shelter Drawings" in the shafts of London subway: people fleeing the German bombing raids into the London subway stations. The underground, the interior of the metropolis, becomes a shelter. Here, Moore develops and cultivates the net drawing technique as a special form of volume representation on the surface. Lines placed over the body accentuate the physical volume without casting any shadow.
The gaps between the wooden boards in Chen's work do a very similar job. They emphasize their sculptural form beyond the strong presence of the material. This has the largest share of the appearance of the work. Wood carving works with a changeable and transient material. Like no other, it reveals the principle of the living, from which contemporary woodcarving draws its fascination. With regards to the field of concrete-abstract art, David Nash and Rudolf Wachter should be mentioned, and Karl Manfred Rennertz and Katsura Funakoshi for the field of figurative art. As for the constructional material, as Chen uses it, the references can be found in Claus Bury's architectural sculptures, or in Tadashi Kawamata's expansive paths, bridges, and dwellings with a decidedly social appeal.
The Wewerka work reveals its interior, which is explored and can be named and constituted at the same time a succinct external, plastic form. It is location and situation-specific. Only in the harmony of predetermined form and function with the form and function Chen has set, does the work have its aesthetic meaning.
Finally, the physical self-experience of the beholder and his movement are of eminent importance, especially in this particular case. He has to act, penetrate into the interior, to understand himself in a special experience as part of a spatial situation. The viewer is the one that perfects the artist’s work.

 Translated by Jaeyong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