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희미한 빛/Light Dim and Ethereal
Translucent colored acrylic plates, lighting,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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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_빛을_머금은_건축적_조각,_2017,_Translucent_colored_acrylic_plates,_lighting,_26x26x15_.5cm(디자인_No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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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12원,_2022,_Translucent_colored_acrylic_plates,_lighting,_wood,_202x202x11cm(디자인_No_.jpg
2._9방,_2022,_Translucent_colored_acrylic_plates,_lighting,_wood,_220x221_.3x10_.5cm(디자인_No_.jpg
6._빛을_머금은_건축적_조각,_2017,_Translucent_colored_acrylic_plates,_lighting,_28_.5x28_.5x33cm(디자인_No_.jpg
13-1._빛을_머금은_건축적_조각,_2017,_Translucent_colored_acrylic_plates,_lighting,_30x30x34cm(디자인_No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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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_방,_2022,_Translucent_colored_acrylic_plates,_lighting,_wood_frame,_31_.5x31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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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가볍지도, 희미하지도 않은
 
현오아(국립현대미술관)
 
 
사과 한 톨을
두 쪽으로 쪼개본다
그 속에 까만 씨앗들이 들어있다
씨앗 속을 쪼개본다
씨앗 속 씨앗 속에 씨알이 들어있다
사과 한 톨에
내가 들어있다
사과 한 톨에 우주가 들어있다.
 
이선옥, 「사과 한 톨에 우주가 들어있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
 
138억 년 전, 우주는 어떤 한 점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팽창해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현대 우주론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이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주는 작아지게 된다. 점차 축소되어 우주는 마침내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시작점, 그 탄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암흑 속에서, 혼돈 속에서, 무(無)에서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에서 만물이 창조된 것이다. 즉, ‘원’은 곧 생명이자 근원이요, 창조이자 우주다.
우주의 시작점에 관한 관심은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우주의 시작을 밝히는 것은 곧 인류의 시작을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암흑의 공간 카오스에서 땅과 어둠이 나타나고, 태초 신들이 탄생한다. 중국의 창세 신화에서는 흰자와 노른자가 뒤섞여 있는 혼돈의 상태에서 우주 폭발과 비슷한 충격으로 ‘반고’ 신이 알을 깨고 나오면서 천지를 창조했다. 우리나라 창세 신화 중 대표적인 ‘창세가’에서도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이전에 미륵이 탄생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틈을 만들어 분리하여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창세 신화에서 나타나는 암흑과 혼돈에서 생겨난 우주의 모습은 빅뱅이론의 가설과도 닮은 지점이 있는 듯하다.
천대광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큰 규모의 설치 작업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이번 전시 《가볍고 희미한 빛》는 대규모 설치 작업을 배제하고 드로잉과 작은 오브제 작품을 실내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정사각형과 원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주요 모티프로 하여 아크릴로 제작한 오브제와 설치 작품으로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음악으로 치자면 소품곡에 해당하는 작은 규모의 작업이다. 야외에서 집을 지었다면, 이 전시는 그 내부의 실내장식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작 전반에서는 ‘동심원’ 모티프가 눈에 띈다. 한 구심점을 기준으로 반지름이 다른 수많은 원으로 이루어진 동심원은 마치 퍼져나가는 물의 파동, 혹은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팽이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것 같다. 점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라면 원을 이루는 선은 방향성의 궤적을 보여주는 움직이는 상태라 할 수 있다. 굴러가는 바퀴, 계절의 순환, 시간의 흐름 등이 바로 그 예가 된다. 차분한 전시장에 왠지 모를 생동감과 활력이 감지되는 것은 이 원의 리듬감 때문인 걸까. 다채로운 색깔도 한몫하는 듯하다. 형형색색의 동심원으로 가득 차 있는 정사각형 목재 프레임으로 제작된 < 원 >(2022)과 < 방 >(2022)은 별, 은하, 행성들이 움직이는 궤도, 팽창하는 우주의 모습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우주의 태양계와 닮아 있는 동심원은 인간과 세상에 관한 관심과 함께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동양철학과 종교, 자연과학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개최된 MMCA 청주프로젝트 2021 《천대광: 집우집주》에서 선보인 < 집우집주 >는 그의 오랜 관심을 집대성하여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는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집으로 상정하고 ‘이상적인 도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집’이 모여 마을, 사회, 국가를 구성하고 더 나아가 우주를 이룬다는 개념에서 출발한 이 작업은 ‘집’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적 요소(건축 재료, 자본 등)와 비물질적 요소(기후, 종교, 문화, 역사 등)를 탐구함으로써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와 같은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까지 나아간다. < 집우집주 >가 그의 철학적 관심사를 집이라는 대상에 투영해서 보여주었다면, 이번 전시를 채운 작품들은 불필요한 요소들을 걷어 내고, 최대로 소박해지고 단순해진 기하학적 패턴에 그의 생각을 담아내었다.
3층에 전시된 설치 작업의 사각형과 원형 모티프는 4층에 전시된 드로잉 작품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벽면 곳곳에 보이는 원, 동심원, 사각형과 같은 기하학적 형태는 색, 선의 굵기, 방향, 간격 등의 조형 요소들을 달리하며 다양한 드로잉으로 실험되었다. 천대광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설치 작업과는 별개로 드로잉 작업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그의 드로잉은 섬세한 선과 건축 설계 도면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수치나 면적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단순한 선에서부터 기하학적인 도형, 식물 혹은 유기체처럼 보이는 유선형까지 다양한 색깔의 선과 면들이 교차하고 분할하며 새로운 공간을 생성해 낸다. 장난감을 갖고 놀 듯, 공간을 이리저리 탐구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전시장 벽 삼면을 꽉 채운 250점의 드로잉은 그의 입체 설치 작업의 청사진으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잡아채어 잠시 붙잡아두는 고정 핀이자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우주는 빛으로 시작되었다.
 
3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색의 빛이다. 각각 다른 높이의 좌대에 유색 아크릴 원판으로 쌓아 올린 탑 형태의 오브제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공중에는 반투명 유색 아크릴 갓을 쓴 전등들이 전시장을 따뜻하게 밝히고 있다. 아크릴을 뚫고 나오는 형형색색의 빛은 밝지만 은은하고, 어슴푸레한 듯 반짝인다.
< 빛을 머금은 건축적 조각 >(2017) 시리즈는 얇은 원형/사각 아크릴판을 일정한 간격으로 섬세하게 쌓아 올려 만든 오브제와 천장에 매달린 조명 형태,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 모두 내부에 조명이 있어 약한 빛을 발산한다. 말 그대로 빛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천대광은 야외에서 대규모 설치 작업을 할 때 안과 밖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장치로서 ‘빛(조명)’을 즐겨 사용한다. 낮에는 밖에서 안으로 빛이 들어오고, 밤에는 안에서 밖으로 빛이 나가면서 안과 밖이 모호하게 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유색 반투명 아크릴은 천대광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재료다. 2016년 현대 모터스스튜디오에서 선보인 < 공허한 빛의 파장(Void Color Space) >(2016)에서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과 색의 삼원색인 청록(cyan), 자주(magenta), 노랑(yellow), 흰색과 검은색, 총 여덟 가지 색의 반투명 사각 아크릴판을 연결하여 스튜디오를 가득 채우는 구조물을 제작했다. 뿐만 아니라 MMCA 청주프로젝트 2021 《천대광: 집우집주》에서도 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가상의 집을 제작했다. 아홉 점의 구조물 중 < 건축적 조각/공허한 빛의 집/RGBCMYK 유리집 >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집으로, 색의 기본 원리에 따라 여섯 가지 색상의 반투명 아크릴을 격자 형태로 이어 붙여 색채 공간을 창조했다. 여섯 가지 색상은 세상 모든 만물이 생성되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와 우주의 메커니즘을 은유적으로 표상한다. 낮에는 햇빛이 들어와 바닥에 컬러풀한 그림자가 생기고, 밤이 되면 내부의 조명이 빛을 발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창세 신화에서도 빛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의 유명한 구절,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3~5절)는 천지창조의 시작이 빛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려준다.
과학계에서도 우주의 탄생은 빛과 함께 했다고 알려져 있다. 태초부터 시작된 빛줄기 속에는 약 50억 년 전 태양계가 처음 형성되던 당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주가 막 생겨났을 때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좁은 공간에 뒤섞여 온도가 너무 뜨겁고 복잡해 빛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우주가 태어난 지 38만 년 후 우주가 팽창하는 데다가 온도가 내려가면서 빛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 ‘태초의 빛’은 아직도 우주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떠돌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135억 년 전으로 추정되는 ‘태초의 빛’ 생성 과정을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7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인류의 새로운 눈’으로 불리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 관측한 영상을 공개했다. 46억 년 전에 수천억 개의 별로 구성된 은하단이 총천연색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새로운 망원경의 개발로 은하들이 생성되기 시작한 초창기 천체들의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주 탄생의 비밀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곧 인류의 기원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천대광이 우주의 기원과 메커니즘을 탐구하고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작업을 풀어내는 것은 거대한 우주의 섭리를 이해함으로써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그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는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질문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태도와 방향을 설정하고자 한다. 그에 대한 답은 영원히 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며 변하고 있고 그에 따라 인간도 변화하기에, 이것은 영원히 순환하는 자문일 것이다. 마치 시작과 끝이 없는 원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천대광의 궤적은 결코 가볍지도 희미하지도 않다. 이것이 바로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